[팔도 VR 과학여행 ③] 한국의 남극&우주공간에 가다

남북극과 달·화성 등 미지의 세계 연구, 과학자들 선봉에 서다

극지연 세계 첫 극지 아쿠아리움과 홍보관 · 건설연 세계 최대규모 지반열 진공챔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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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orghs12345@hellodd.com

언택트 시대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온라인, 비대면이 일상화가 됐다. 체험이 중요한 과학관 역시 굳게 문을 닫았다. 본지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획 공모에 ‘코로나19 특집 대한민국 팔도 VR 과학여행’에 선정됨에 따라 제주부터 강원도까지 과학시설을 취재했다. 보도는 ▲제주도 ▲경기도 ▲전라도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대덕연구단지 순이다.<편집자편지>

인간은 오래전부터 미지세계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갖고 탐험을 해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누볐고, 강을 따라, 혹은 척박한 사막을 횡단하며 새로운 활로를 개척했다.

탐험은 지금도 계속된다. 그 선봉에 과학자들이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춥다고 알려진 남극과 북극을 가기 위한 도전이 있었고 이제는 그곳에 터를 잡고 극지의 신비와 기후변화에 따른 선제 대응을 위한 도전을 하고 있다. 지구를 넘어 달이나 화성에 기지를 짓고 자원을 확보하려는 시도도 진행 중이다.

미지의 세계를 연구하기 위해 극한환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연구시설이 있다고 해 찾았다. 남극 물고기를 직접 키우는 세계 첫 ‘극지 아쿠아리움(극지연구소의)’과 달 환경을 그대로 구현한 세계 최고 규모 ‘지반열 진공챔버(한국건설기술연구원)’다.

"안녕! 난 남극에서 온 물고기~" 극지 아쿠아리움에 가다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 다다를 즈음 보이는 인공섬이 있다. 인천 연수구와 남동구 앞바다를 간척해 만든 ‘송도국제도시’다. 송일국과 세쌍둥이, 이동국이 예능 ‘아빠 어디가’를 촬영하며 전국적으로도 유명해진 이곳은 육지와 멀지 않지만 짤막한 다리를 건너야 도착하는 인공섬 형태를 띤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17배에 달하는 크기(53.45㎢)로 약 16만명이 모여 살고 있다. 다양한 연구시설과 교육, 기업, 주거시설로 주목받는 도시 중 하나다.

송도국제도시의 복잡한 주거시설을 벗어나 한참을 달리다 보니 높다란 건물이 눈에 띄었다. 2006년부터 인천에 자리 잡은 ‘극지연구소’다. 극지연은 기후변화의 선제 대응과 극지 연구 저변확대에 매진하고 있다.

국내 유일 쇄빙선 ’아라온호‘

연구원 대부분은 국내 유일 쇄빙선 ‘아라온호’를 타고 남극과 북극을 오가며 극지 관련 기초연구와 첨단응용과학연구 등을 수행 중이다.

출입절차를 밟고 연구소에 들어가자 한가운데 큰 창고가 보였다. 극지를 오가며 연구원들이 직접 채취한 여러 시료가 보관된 장소다. 이곳에 우리나라가 처음 구축한 독특한 공간이 있다. 5t 규모의 수조와 냉각시스템을 갖춰 극지와 유사한 환경을 재현한 ‘극지 아쿠아리움’이다.

2017년부터 운영 중인 극지 아쿠아리움은 극지에 더는 가지 않고 한국에서 물고기를 인공번식시켜 새로운 개체를 통해 지속적인 실험을 위해 만들어졌다. 터줏대감은 남극 대표 물고기 ‘남극검은암치’와 ‘대리석무늬암치’ 두 종이다. 극지에 사는 물고기는 약 123종으로 두 종이 약 80%를 차지한다.

남극세종과학기지

남극 킹조지 섬에 건설된 우리나라 최초 남극 과학기지이다.

물고기들은 모두 연구자들이 직접 통발이나 낚시를 통해 잡은 것들이다. 극지 해양생물을 연구용으로 채집하는 것은 허가돼 있어 가능하다.
하지만 현지에서 잡은 중대형 물고기를 자국으로 데려온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극지에서 돌아오는 약 2~3달 동안 물 온도와 먹이를 직접 주는 등 환경이 받쳐줘야 하기 때문.
극지연은 아라온호에도 유사시스템을 구축해 세계 첫 중대형 극지물고기를 키우고 연구하는 기관이다.

극지 아쿠아리움 입구에 들어가자 황복이 기자를 반겼다. 극지 어류는 아니지만 생태적 특징과 유전자적 특징을 비교하기 위해 키우는 종이다. 복어는 인간과 유전체 유사성이 80% 이상으로 전 세계적으로 연구에 많이 활용한다.

유영하는 남극 어류

황복 수조를 지나 안쪽으로 냉동창고와 유사한 큰 문이 열리자 기분 좋은 시원한 공기가 쏟아져나왔다. 진짜 극지 물고기가 사는 아쿠아리움이다. 이곳은 4계절 상관없이 평균 10도를, 물 온도는 0도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극지유전체사업단 김진형 박사

물에 손을 담그자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차가운 물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중대형 물고기들은 바닥에 붙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이곳을 총괄하는 김진형 극지유전체사업단 박사는 “우리 몸이 차가운 물 속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에너지 소비가 크듯, 물고기들도 먹이활동 외에는 에너지소모를 줄이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극지의 물고기들은 물 위로 떠오르는데 필요한 부레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대신 뼈를 연골화해 물 위로 뜬다. 이 특징을 연구하면 사람의 골다공증 치료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극지 물고기들은 혈액의 헤모글로빈 성분이 일반 물고기의 절반도 채 안 되는 특징을 갖는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 발생하는 빈혈치료제 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다. 이외에도 뼈를 부드럽게 만들고, 세포 파괴를 막는 성분을 생성하는 등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물고기의 진화 연구를 통해 인간에 다양하게 접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극지 물고기들은 무엇을 먹을까. 김 박사에 따르면 극지역 작은 해조류에 붙은 벌레나 크릴을 먹지만 국내에는 구할 수 없어 인공 배합사료를 개발했다.

김진형 연구원은 ‘이곳에서 연구를 통해 극지 물고기들은 식도가 얇고 평평하다는 것을 알았다. 먹이를 씹어 넘기는 게 아니라 흡수하는 식으로 먹다 보니 덩어리나 각진 사료를 씹을 수 없었다’며 ‘젤라틴과 여러 배합사료를 섞어 푸딩처럼 얇으면서 탱글탱글한 사료를 만들었다. 잘 먹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물에 자연적으로 녹아 물관리에도 유용해 일반 물고기를 대상으로 상용화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올 초 연구팀은 인공산란도 시도했다. 암놈에게 산란을 유도해 알을 받았지만 아쉽게 수놈 개체가 부족해 성공하지 못했다. 아쉬움을 계기로 유전자 분석을 통해 암수컷 분리방법도 함께 연구 중이다.

설명을 듣는 와중에 1~2층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다. 2층에 정화시스템을 소개해주겠단다. 극지 아쿠아리움의 물은 남극에서 가져온 바닷물로 쉽게 구할 수 없어 제대로 정화하는 시스템이 중요한데 그 모든 시설이 2층에 완비돼있었다.

연구팀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순환 여과 과정처리 시스템’을 개발했다. 여러 개 파이프라인에 차가운 물과 데워진 물을 흘려보내 열을 효과적으로 교환하면서 물을 차갑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극지 아쿠아리움 관련해 2018년 세계 최초로 특허를 출원했다.

김진형 박사는 ‘많은 선진국에서도 다 커봐야 한 뼘 정도 되는 작은 물고기를 데려와 연구를 시도했을 뿐이다. 큰 물고기를 데리고 오겠다는 말에 모두 농담처럼 웃어넘겼지만, 지금은 공동연구를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며 ‘무엇을 하든 처음이라 겪는 어려움도 있지만, 우리가 먼저 연구할 기회라는, 전 세계 최초로 얻는 결과라는 뿌듯함과 자부심을 가지고 연구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최대 100여마리가 살았다. 코로나19로 아라온호 연구가 축소되면서 데려오지 못해 10여마리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기회가 왔다. 아라온호가 오는 11월 출항해 약 6개월간 바다를 떠돌며 극지 연구를 할 계획이기 때문. 김 박사팀에게도 아라온호에서 해양생물 샘플링 기회가 주어졌다. 김진형 박사는 ‘올해는 코로나19로 긴 시간 동안 배에서 내릴 수 없어 어려움도 예상되지만 가능한 많은 개체 수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펭귄부터 북극곰까지, 극지 연구의 모든 것 ‘극지연 홍보관’

극지 아쿠아리움을 둘러보고 본관 1층 극지연 홍보관을 찾았다. 중고등학생들이 주로 찾는 공간이지만 현재는 코로나19와 일부 리모델링 등으로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남극에 사는 5종의 펭귄 친구들과 바다표범을 만나다

입구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남극에 사는 5종의 펭귄 친구들과 바다표범 등이다. 이 동물들은 박제한 것으로 펭귄은 연구원들이 굶거나 얼어 죽은 아이들을 데려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곳은 남극의 펭귄 마을을 조그맣게 재현해 놓았다. 펭귄 마을은 남극 세종기지에서 2km 떨어진 곳에 있고 71번째로 남극에서 특별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특별 허가를 받은 자 외에는 출입이 금지돼 있다.

펭귄 옆에는 극지연구원들이 실제 사용한 장비를 전시해 놓은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연구자들은 기지에서 멀리 떨어진 공간으로 연구하러 갈 때 설상차에 짐을 가득 싣고 두꺼운 옷을 껴입고 출발한다. 극지의 여름은 따뜻한 편이기 때문에 베이스캠프를 쳐놓고 밖에서 잠자며 얼음을 시추하거나 샘플링작업을 하기도 한다. 찬 바람과 세월의 흔적으로 헤진 장비 모습에서 남북극에서의 상황이 얼마나 극하고 고된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오로라를 보다

실제 보기 어려운 오로라를 암실 가운데 있는 소파에 걸터앉아 멍하니 바라보며 작은 힐링을 했다.

세계 최초 최대 규모 달 환경 구현, 상상을 현실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일산에 본원을 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우리나라 유일 건설 분야 국책연구기관이다. 우리가 생활하는 건물부터 도로, 섬을 잇는 다리, 도시의 물 순환과 하천 등 건설과 국토관리의 모든 것을 연구한다.

지구 생활에 필요했던 건설과 토목을 연구했던 건설연이 2016년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달과 화성 등 우주 환경에서 건물을 올리는 것이다. 상상으로 그칠 줄 알았던 건설연의 도전은 지난해 극한환경 건설기술 실증공간인 ‘미래융합관’을 2019년 개관하면서 공공연해졌다. 이곳에는 ▲지반열 진공챔버 ▲ 모의극한지형실험실 ▲건설재료3D 프린팅 실험실 ▲인공지능 및 영상처리 실험실 등 우주건설 핵심기술에 필요한 연구인프라가 다양하게 구축돼있다.

  • 그중에서도 단연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달 표면 환경을 그대로 모사한 세계 최초, 최대 규모의 ‘지반열 진공챔버’다. 이 챔버는 높이와 폭이 각각 4.7m로 무게 100t의 원통형 장비다. 마치 옆으로 뉘어놓은 대형 밥솥을 연상케 한다.
  • 이 챔버가 특별한 것은 월면토와 같은 불순물을 넣은 상태에서 순수 진공상태를 유지하면서 영하 190도~영상 150도까지 자유롭게 조절하며 극한 달 환경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다.
  • 월면토가 깔림으로써 달탐사미션이나 건설재료 생산, 거주공간 연구 등 다양한 테스트가 가능하다. 기존 챔버는 불순물을 넣는 경우 소규모에서만, 혹은 진공고온저온 구현만 가능해 인공위성 테스트 등 테스트 가능한 연구가 제한적이었다.
흙과 흙 사이에는 공극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기존에는 왜 불순물이 있는 상태로 진공을 유지하기 어려웠을까. 챔버를 연구관리하는 정태일 전임연구원에 따르면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흙과 흙 사이에는 공극이 존재한다. 그 상태로 챔버 속 공기를 펌프로 다 빼버리면 공극에 차 있던 공기들이 한꺼번에 빠져나오면서 흙이 화산 폭발하듯 끓기 시작하고 주변으로 날리며 펌프 속으로 흙이 빨려 들어가 고장을 유발한다. 펌프의 가격은 약 1억정도의 고가로 불순물이 있는 상태에서 진공상태 유지를 연구 자체가 모험이었다.

물론 천천히 감압(減壓)하면 진공상태를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대형챔버는 공기를 다 빼내는데만 1~2달이 소요된다. 이에 정 박사팀은 최선의 감압속도를 분석해 비산을 막는데 성공했다. 연구팀이 제시한 진공 가이드라인을 따르면 5일 안에 진공상태를 만들 수 있다.

설명을 듣고 난 후 챔버의 내부를 살펴봤다. 문이 열리자 챔버 내 온도를 높이고 낮춰주는 할로겐램프가 달린 내부가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바로 앞 컨테이너 벨트를 통해 챔버 안으로 월면토를 실은 커다란 상자가 지반열 진공챔버 안으로 이동했다. 이 상자 안에는 최대 25t의 월면토를 실을 수 있다.

국내 처음으로 개발한 ‘달 시추 자동장비’

달 환경을 그대로 모사하는 챔버가 개발됐다는 소식에 우주개발에 주력하는 여러 나라 연구자들은 지난해 공동연구를 모색하기 위해 건설연에 다녀갔다. 올해 미국의 블루오리진 등과 공동연구를 추진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로 출장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잠시 중단된 상황이다.

‘달 시추 자동장비’

대신 건설연은 국내 처음으로 개발한 ‘달 시추 자동장비’를 올해 테스트할 예정이다. 이 시추장비는 달에 매장된 얼음을 발견·분석하기 위해 이장근 박사팀이 개발했다. 달에서 물이 발견되면 산소와 수소로 분해해 산소는 사람의 호흡에, 수소는 로켓연료로 쓸 수 있고 물을 녹여 마실 수도 있다. 이 외에도 건설연은 국내 수요를 발굴해 여러 기관과 공동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취재 및 기사, 사진, 영상= 대덕넷, 웹편집= 지오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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